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국-대만 관계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[[신해혁명]] 이후 [[중화민국]]이 건국되었을 때는 별다른 관계의 특이 동향이 없었지만, [[만주사변]]과 [[중일전쟁]]으로 [[미일관계]]가 크게 악화되자 [[중화민국]]을 비공식적으로 지원해왔다. [[태평양 전쟁]]으로 미국이 공식적으로 [[연합국]]으로서 참전한 이후에는 [[일본 제국]]이란 공동의 적을 둔 연합국의 일원으로 중화민국과 [[미국]] 간 관계는 동맹으로서 원활했다. [[중국 국민당]]이 [[타이완 섬]]으로 [[국부천대|쫓겨난]] 이후에도 대만(중화민국)은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공산 세력의 태평양 진출을 막는 방어선 역할을 수행하며 미국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한다. [[6.25 전쟁]]이 발발함에따라 [[해리 S. 트루먼]] 미 대통령은 중국이 한반도에 완전히 무력투사를 하지 못하도록 [[애치슨 라인]]에 제외되었던 대만에 대한 7함대의 방어 선언을 한 뒤 1951년엔 100여명의 군사고문단을 대만에 파견한다. 특히 1954년 1차 양안위기로 1955년에 미국과 대만이 [[미중상호방위조약]](Sino-American Mutual Defense Treaty)를 체결함에따라 양국의 동맹이 형성된다. 이 땐 [[주한미군]]처럼 [[타이베이]]에 대만 주둔 미군사령부(USTDC, United States Taiwan Defense Command), 군사고문단, 미군 방송국, 미군 주택들이 들어서고 [[타오위안]]에 미 육군 기지는 물론 [[타이중]], [[타이난]] 공군기지에 미공군의 주요 전력들이 전개되고 [[가오슝]]에는 [[제7함대]] 소속 분견대가 주둔했다. 병력은 1만명에서 최대 3만명까지 상당했으며 알래스카 공군, 하와이 공군, 필리핀 클라크 기지에서의 증원도 있기에 대만은 중국의 턱밑을 겨누는 미국의 난공불락 요새가 되었다. 심지어 [[진먼]]에 딸린 우추 향에도 미군의 MGR-1 미사일, 레인저, 해군 감청기지 등이 배치되었다. 하지만 이렇게 별 탈 없이 유지되던 동맹 관계는 닉슨 대통령 시절 핑퐁 외교로 미국 - 중국 간 관계가 급진전된 이후 큰 격변을 맞이하는데 마침 대만이 UN에서 사실상 쫓겨난 뒤 양국 간 동맹관계는 서서히 금이 갔다. 중국과 서방 국가들이 서서히 외교 관계를 수립하기 시작하고 미국 또한 정식으로 중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기 시작하는데 [[중국]]은 수교조건으로 대만과의 관계를 끊을 것을 요구한다. 중국의 거대한 시장 잠재성과, 그의 관계 개선으로 소련을 제어하는 외교력을 노리던 미국은 할 수 없이 1979년 대만과의 국교를 단절한다. 동년도 4월에 대만 주둔 미군 사령부는 해체되었고 12월 31일에 미중상호방위조약 역시 만료된다. 하지만 미국은 그동안 맺어온 동맹 관계를 감안해 그때까지 대사관 부지를 매각할 수 있게 시간을 벌어주었다.[* 중국은 대만과 수교하던 나라와 수교를 하게 되면 대만과의 국교 단절과 함께 대만 대사관 건물을 중국 대사관으로 넘겨주도록 요구한다. 한중수교 당시도 이렇게 했다. 미국의 조치에 대해 중국은 본국 내 미국 자산을 동결하는 것으로 보복했다.] 미국이 '대만'과의 국교를 단절한 이후 양국은 서로의 나라에 대표부를 둬 비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고 [[타이완 관계법]]을 통해 미국과의 안보-군사적 밀월을 다지고 있다. 그러나 현재 중국의 입김이 강해져[* 대만으로의 미국 무기 수출에 압력을 가한다든지] 미국의 개입도 예전만은 못해지다 보니[* 미국이 확실히 개입을 한 건 1996년 독립 성향이었던 리덩후이 총통의 재선을 막기 위해 중국이 미사일 발사훈련으로 무력시위를 하자 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대만관계법으로 항모전단을 파견했다. 이 당시만 해도 연안해군 수준에 머물렀던 [[중국 인민해방군 해군]]은 결국 이 항모전단의 무력 시위에 깨갱해 한 발 물러섰고 이렇게 해서 탄생한 물건이 [[랴오닝급]]이다.] 미국 내에서도 대만과의 밀월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회의론이 나돌기도 한다. 일단 미국은 [[양안관계]]에 현상 유지를 원하고 있다. 대만이 중국에 편입되는 상황도 물론 원하지 않지만 양안 대립이 격화되어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 역시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. 그래서 대만 독립을 주장해 타이완 해협의 긴장이 최고조였던 [[천수이볜]] 총통 시절에도 미국과의 관계는 별로 좋지 않았다. 2002년에는 1979년 단교 이후 [[천딩난]](陳定南) 당시 법무부 장관이 [[존 애쉬크로프트]] 당시 법무부 장관을 만나 고위급회담이 가진 적 있다.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Republic_of_China_(Taiwan)_9%E2%80%9313_July_2002_state_visit_to_the_United_States_of_America|#]][* 표면상으로 방미 이유는 9.11 테러 이후 공조 방안이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